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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 속 여성 캐릭터, 희생자에서 주체로의 진화

by againluka 2025. 7. 24.

공포 영화 속 여성 캐릭터 관련 사진

공포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오랜 시간 동안 피해자, 유약한 존재, 구원받아야 할 인물로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현대 공포영화에서는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점차 주체적이고 복합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공포영화 속 여성 이미지의 전통적 역할부터 현대의 반전 캐릭터까지, 시대 흐름에 따른 여성 캐릭터의 진화 양상을 분석한다.

비명을 지르던 그녀는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게 되었는가

공포영화 속 여성 캐릭터는 오랫동안 '공포의 대상자' 혹은 '공포의 상징물'로 자리매김해 왔다. 특히 20세기 중반까지의 공포영화에서는 여성은 괴물에게 쫓기고, 붙잡히고, 끝내 구해지거나 죽음을 맞는 전형적인 '희생자' 역할에 머물렀다. 여성 캐릭터의 등장은 종종 시청자의 감정적 공감과 긴장감을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었고, 이들은 대부분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프레임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해체되기 시작한다. 특히 페미니즘의 흐름과 함께 영화 속 여성 재현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여성 캐릭터는 단순한 피해자를 넘어 스토리를 능동적으로 이끄는 주체로 탈바꿈해 왔다. 이는 단지 캐릭터의 성격 변화에 그치지 않고, 영화의 구조와 테마, 그리고 관객이 공포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파이널 걸(Final Girl)’이라는 개념은 그 대표적인 진화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파이널 걸은 슬래셔 영화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여성 주인공을 뜻하며, 대부분 지적이고 도덕적인 기준을 유지하며 끝까지 악에 저항한다. 이 개념은 여성 캐릭터가 단지 공포의 희생자가 아니라, 공포를 이겨내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장르의 성격을 변화시켰다. 이 글에서는 공포영화 속 여성 캐릭터가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어 왔으며, 어떻게 전형성을 탈피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했는지를 살펴본다. 고전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작품 속 여성 인물들을 분석하며, 그 변화가 단순한 캐릭터의 성격 변화를 넘어서 영화 자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수동적 존재에서 서사의 주체로

초기의 공포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대체로 공포를 유발하는 존재 또는 그에 의해 고통받는 존재로 등장했다. 예컨대 고전 영화 「드라큘라」(1931)나 「프랑켄슈타인」(1931)에서 여성은 괴물에게 희생당하는 순수하고 유약한 이미지로 그려졌으며, 이들의 역할은 영화 속 남성 인물의 영웅성을 강조하는 장치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1970~80년대에 이르러 슬래셔 영화의 유행과 함께 여성 캐릭터의 서사적 위치에 변화가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할로윈」(1978)의 로리 스트로드는 지적이고 조심성이 많은 성격으로 설정되며, 영화 속 살인마 마이클 마이어스를 끝까지 저항하며 살아남는다. 로리는 단순히 운이 좋아 생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과 판단으로 공포를 견디고 맞서는 능동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이러한 캐릭터는 ‘파이널 걸’의 전형이 되었고, 이후 「스크림」 시리즈의 시드니 프레스콧, 「텍사스 전기톱 학살」의 샐리 등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모두 공포의 대상과 맞서 싸우고, 도망치지 않으며, 자신의 공포를 인지하고 극복하는 인물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캐릭터들이 단순히 ‘살아남는 여성’이라는 의미를 넘어, 영화 전반을 통해 관객이 감정적으로 동일시할 수 있는 주체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21세기 이후에는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보다 복합적이고 심리적인 방향으로 확대된다. 「바바둑」(2014)의 아멜리아는 아동을 잃은 후 겪는 슬픔과 트라우마 속에서 괴물과 싸우는 인물로, 공포의 실체가 단순한 외부의 위협이 아닌 내면의 고통이라는 점에서 한층 성숙한 주체성을 보여준다. 이와 유사하게 「허위드(hereditary)」(2018)의 애니는 가족 간의 비극과 초자연적 현상 사이에서 복합적인 감정과 행동을 보여주며, 단순한 피해자에서 벗어난 서사의 중심인물로 작용한다. 또한 여성 캐릭터는 때로 ‘괴물’로 그려지며 기존의 젠더 구도를 전복한다. 「캐리」(1976)의 캐리는 억압받는 소녀에서 초능력을 통해 폭발하는 존재로 변모하며, 「진저 스냅」(2000)의 진저는 늑대인간의 형상을 통해 사춘기, 여성성, 욕망 등을 공포의 코드로 해석한다. 이들 영화는 여성의 힘을 단지 피해자의 반대편으로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공포 그 자체로 확장시키는 전략을 택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인종, 성 정체성, 계층을 지닌 여성 캐릭터들이 공포영화에서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이는 단지 젠더적 대표성의 확대에 그치지 않고, 공포라는 장르가 수용할 수 있는 서사의 폭을 넓히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로써 여성 캐릭터는 더 이상 특정한 성격에 갇히지 않으며, 각기 다른 맥락 속에서 다양한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로 재정의되고 있다.

 

비명을 넘어서 목소리를 가지다

공포영화 속 여성 캐릭터는 오랜 시간 동안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기다리는 존재로 그려졌지만, 이제 그들은 이야기를 이끌고, 공포와 맞서며, 때로는 공포의 주체로 기능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캐릭터의 성격이나 기능적 전환이 아니라, 영화 자체의 구조, 주제, 감정의 흐름을 바꾸는 근본적인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여성은 공포를 당하는 자가 아니라, 그 공포를 인식하고 대응하며, 자신의 감정과 트라우마를 중심으로 서사를 구성할 수 있는 주체로 성장했다. 이는 단지 페미니즘적 가치의 반영을 넘어, 장르 자체의 확장과 진화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여성 캐릭터의 복합성과 주체성은 공포영화의 깊이를 더하고, 관객의 공감과 몰입을 극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공포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예측하게 만든다. 단지 누가 살아남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어떤 이야기로 자신의 공포를 마주하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말하는가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결국 공포영화 속 여성은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로, 그리고 자신의 방식으로 공포를 완성하는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